홍석진 교통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 4월 15일 김해공항 인근의 돗대산에 추락한 중국국제항공공사 (Air China, 이하 중국항공)의 사고는 대형 항공기 사고치고는 생존자가 38명이나 되고, 블랙박스가 즉시 회수되었으며,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증인 역할을 하게될 기장이 생존해 있어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기 사고의 전례로 보아 사고 원인을 예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99년 12월에 발생한 영국 스텐스티드에서의 대한항공 화물기 추락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아직 영국 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섣부른 사고원인 추정은 금물
섣부른 사고원인 추정은 금물
사고 발생 후 국내 일부 언론에서 조종사의 실수의 가능성을 부각하자 중국 측 사고조사단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태도를 보임과 동시에 우리 측 관제실수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사고조사를 임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우리보다 사고조사 관련 전문성과 기술이 발달 되 있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고 원인을 밝히는데 2-3년을 소요하고 있다.
이런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항공기 사고의 원인은 차후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의 개선 및 관련 전문인력의 양성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사고 조사를 하는데에는 전문가들에 의한 현장 증거물이 수집되어야 하고, 관련된 사람 (탑승객, 승무원, 목격자 등)들의 진술과 블랙박스 (CVR-Cockpit Voice Recorder and DFDR-Digital Flight Data Recorder)에 수록 되있는 비행기록 자료를 해독하여, 3차원적인 분석을 통해서만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보잉사는 1991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발생한 211건의 전손 사고 가운데 사고 원인이 밝혀진 146건 중에서 약 66 %가 조종사의 실수에 의해서 발생했으며, 항공기 기체 고장은 13%, 기상에 의한 사고는 8 %, 정비결함은 5 %, 공항시설 및 관제의 실수는 약 3 % 그리고 기타 인 것으로 발표한바 있다. 이와 같이 항공 사고의 약 60-70 % 이상이 인적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으나, 사고조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도 전에 조종사의 실수를 부각 한 점에는 문제가 있다 하겠다.
설령 사고 원인이 인적요인 (조종사의 실수)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그 개인을 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에 항공기 사고 원인과 인적요인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들 중 미국 텍사스 A & M대학의 헬름라익 교수는 인적요인에 대한 사고 중 상당수가 그 조직이 속해있는 조직적인 요인 혹은 문화적인 요인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항공운송업계에서는 헬름라익 교수의 논리에 대해 긍정하는 분위기이다.
그동안 항공운송업계에서는 조종사들이 전문화된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비교적 선진문화를 빨리 흡수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각국의 고유한 문화나 조직의 문화에 크게 지배 받고 있지 않다고 인식을 해왔었다. 그러나 헬름라익 교수의 연구에서는 다른 전문가 직업군들과 같이 조종사들도 자국의 문화와 항공사 고유의 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연구 결과로 지적하였고, 1997년 8월에 발생한 괌사고의 원인도 위계질서를 강조한 유교문화가 일부분 기여를 했다고 그의 이론에 동조하는 미국의 언론들이 지적 바 있었다.
중국항공 129편 사고도 다양하게 얽혀 있는 사고 원인을 실타래 풀 듯 밝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고 이를 중국정부와 중국항공 관계자에게도 권고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언론 등에서는 사고원인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유도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고, 우리정부 당국의 사고조사 요원들도 충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참여 시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힘은 물론 사고조사 기법을 향상시키고 전문가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동북아 물류중심이 되기 위한 중요한 교두보로서 중국
공교롭게도 중국항공의 사고는 1999년 4월 15일 대한항공 화물기가 상해공항을 이륙하면서 추락 3년후 같은 날에 발생하였다. 3년을 간격으로 두고 양국의 항공사가 서로 사고를 상대방 국가에서 일으키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한중 노선은 국제노선 중 일본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 3월 부터는 주당 운항회수가 종전의 95회에서 133회로 40 %가 증가하였다.
94년도 중국 시장 개방이후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은 한국의 경제 성장에도 견인차 역할을 하고있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항공운송분야에 있어서는 매년 15 % 이상의 고도의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한-중 노선의 운항회수 및 수송량이 조만간 한-일 노선을 따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시장은 우리에게는 커다란 배후 시장이면서 성장 속도에 맞는 항공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한국이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할 시장이다. 이는 인천국제공항의 헙 (Hub) 기지화 와 지방공항의 활성화등에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일석이조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이다.
안전과 성장은 동시에 추구해야 할 두 마리의 토끼
그러나 항공운송산업에서는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는 항상 “위험 (안전)”이라는 Trade-Off 되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1996년도 미국의 ValuJet의 사고가 이를 증명해주었었다. “저비용 항공사”로 출발한 ValuJet는 내부의 안전문화가 채 자리 잡기도 전에 급속한 성장을 하여 결국은 96년 5월 플로리다에서 당시 주력 기종이었던 DC-9기가 추락하여 109명의 승객 및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를 계기로 회사는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는 성장과 안전이라는 양축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 항공운송산업이 성장이라는 한축으로 만 지향(指向)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중국항공 129편의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확대되는 양국간의 항공수요에 걸맞게 항공안전에 대한 공동의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항공안전 관련 제 정보 (사고, 준사고, 비정상운항, FOQA (Flight Operation Quality Assurance) 데이터 등)를 일상적 수집을 통해 위험관리 체계 (정량적, 정성적인 모델 이용)를 구축하여 예방적 기능을 강화 할 수 있는 체계의 구축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이러한 위험관리 체계는 현재 정부가 갖고 있는 기술적 측면의 항공사 감독 기능과 함께 항공안전 측면에 있어 예방적 기능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작년 미, 연방 항공청으로부터 항공안전 위험국으로 분류된 경험에 비추어 위험관리 체계 및 항공사 감시 프로그램은 국내적 기준이 아닌 국제적 기준에 적극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다.
각국은 공동의 국제표준을 적용해야 할 시점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에서는 1992년 29차 총회에서 항공안전 위험국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1995년 31차 총회에서는 회원국을 상대로 항공안전 감사를 하기로 의결하여 현재까지 거의 모든 회원국을 상대로 국제민간항공기구 부속서 1 (항공 종사자 면허), 6 (항공기의 운항)과 8 (항공기의 감항성)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2001년 10월에 있었던 33차 총회에서는 부속서 11 (항공관제)와 14 (비행장)대한 감사를 2004년까지 실시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이는 1944년 시카고에서 맺은 항공안전에 대한 국제적인 공동의 룰을 갖추기 위한 작업이 5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항공안전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을 갖추자는 선구적인 노력이 이렇게 늦게 도입, 적용이 되고 있는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각국의 항공운송산업의 발전 정도에 차이가 있음이고, 둘째, 국제민간항공기구가 각국을 규제할 방법이 없었던 점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미국이 국제항공안전 프로그램 (IASA : International Aviation Safety Assessment)으로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토를 취항하는 국가를 평가하여 항공 위험국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다. 셋째, 각국의 비경제적 규제 (기술과 안전 측면)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전 세계의 안전한 영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항공안전 수준을 국제적인 표준에 부합하도록 자국의 체제를 정비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이제는 각국이 새로운 항공협정을 맺거나 갱신 할 때는 항공안전에 대한 상호 감시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는 상호국 간에 국제적인 표준에 맞는 시설, 교육 시스템과 안전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점검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회원간에 결의하고 점차적으로 확대 진행되고 있는 “다자간 항공안전 감시 체계 (Multilateral Monitoring System)"가 구현 될 것이고 항공운송산업의 성장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중국의 취약한 항공인프라, 일본에서의 공항, 공항 접근로, 공역 등의 혼잡 현상으로 성장에 둔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한국은 항공운송산업 측면에서 중국과 일본의 방대한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Safer Skies" 정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 지역을 리드 해나가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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